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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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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한

 

주말이면 어김없이 원앙새 그림으로 예쁘게 단장한 한 두통의 청첩장이 날아온다. 바야흐로 결혼 시즌이 시작되었나 보다.

 

항상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지내시던 이웃 분의 따님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이곳 시골에서는 가히 유학이라 할 수 있는 서울까지 가서 대학 공부를 한 유능한 아가씨이다.

 

일반적으로 결혼 조건이라 말하는 집안. 학벌, 인물 중 아무것도 뒤질 것이 없는 최상급 신부 감임에는 틀림없는지라, 사돈 댁 역시 내 노라 하는 집안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돈댁에 뒤질세라 이것저것 살피면서 준비해야 하는 신부 집의 엄마는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닌 듯했다. 나이 드신 분들의 말씀대로 누울 사돈 설 사돈이 따로 있다더니 애지중지 기른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 속들은 다 저럴진데, 요즘 세상의 결혼 풍토가 정말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된다.

 

오래 전의 나의 결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내 월급으로 둘이는 충분히 먹고 살고도 남아요. 그리고 다이아반지는 꼭 끼워 줄 수 있어요.”

 

급하게 뱉어 내던 남편의 말은 철이 든 지금 생각하니 꽤 우습다. 남편이 얘기한 먹고 살고도 남는다는 건 도대체 대한민국의 어떤 월급쟁이의 수준이었을까. 하여튼 그런 저돌성적인 발언을 프로포즈라 여기고 더 생각하고 말고 할 여지도 없이 결혼 승낙을 해 버렸다. 막내아들과 막내딸로 만난 우리 두 사람이 양가에서 얻어 올 것이라고는, 조금이라도 보탤 수 없는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축복해 주시던 나이 드신 부모님들의 걱정스런 모습뿐이었다. 그 시절의 신혼부부들이 거의 다 그랬다. 남의 집 단칸방부터 출발했지만 가난조차도 아름답던 시절이었다. 하나가 둘이 되고, 셋도 되고, 넷까지 만들었으니, 그 충만한 행복감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어떤 가치가 있었다. 한 가지, 한 가지씩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필요한 살림살이를 모으던 우리의 소꿉놀이 같던 신혼 시절. 적금 타는 날은 또 그 기쁨이 어떠하였던가. 백 만 원이 소중하고 또 귀해서 내일이면 어김없이 통장으로 입금해야 될 돈이건만, 단 하룻밤이라도 이불 밑에 돈을 재워서 함께 잠들어 보던 건 무슨 심보였을까. 지금은 천 만 원인들 그때 그 밤처럼 내게 감동을 줄 수 는 없을 것이다. 참으로 목 메이게 그리워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맨발로도 달려가고 싶은 시절이다.

 

흔히들 요즘 세상은 부모 노릇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지난시절 내 부모님들도 나름대로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잘 먹이고 잘 입히지도 못한 죄스러움, 큰 공부 시키지 못한 한스러움, 풍족하게 한 살림 차려 주지 못한 미안함……, 해 주고 싶은 그 마음만큼 못해 주는 그 속이 더 아리고 괴로우셨으리라 짐작이나마 하게 된 것은 내가 부모가 되기 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결혼 시즌을 맞이한 많은 선남선녀의 행복한 웃음 뒤에는 숱하게 많은 부모님들의 한숨이 숨어 있다는 생각은 나의 지나친 노파심일까. 많이 받느냐 적게 받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자식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부모님의 마음이 꼭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어른이 조금씩 되어 간다는 것을 스스로 성취시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다 더 큰 가치를 둘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아직도 진정한 효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것 중의 하나가 효일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이웃집 규수의 청첩장을 보면서 원앙이 곱게 새겨져 있는 그 모습처럼 두 집안이 모여 하나를 이룬 가정이라는 보금자리에서 서로 평생을 사랑하며 다복하게 살아 주는 것이 자식들이 부모께 바칠 수 있는 최상의 효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혼식장에 참석하려갈 때 나는, 여간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사위에게 귀한 딸을 넘겨주고 나오는 신부아버지를 쳐다보기가 가슴 아파서이다. 찡해져 오는 코끝 하며 쏴아하게 한 차례 아파오는 속은 신부를 사위에게 넘겨주고 나오는 친정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을 것 같은 내 마음 때문이다. 올해 역시도 코끝 찡해지는 마음을 몇 차례쯤 겪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리지도, 그렇다고 나이를 한참 먹지도 않은 어중간한 정도의 어른인 난, 또 다른 하나의 시작을 위해 물질의 풍요보다는 추억의 아름다운 시간에다 삶의 절대적 가치를 두면서 조금 씩, 조금 씩 어른이 되어 갈 이 세상 모든 예비 신랑 신부가 참 많이 부럽다.

 

신이시여, 원앙의 둥지에 축복을 내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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