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04-24
김홍애
합천꿈꾸는 지역아동센터 생활복지사 김홍애
일터에서 점심을 먹고 나른한 휴식시간을 즐기고 있는 중 뜬금없이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사계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에서 살고 있음을 항상 감사한다. 나의 상사는 누런 기운을 뽐내는 가을이 되면 일부로 먼 길을 에 돌아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면서 일을 보곤 한다. 그 정도로 가을을 좋아한다. 황매산 자락에 자리 잡은 나의 일터는 가을이 되면 산 경치가 정말로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감동적이고 가슴을 벅차게 하며 차창으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은 내가 삶에 고마움을 느끼게까지 만든다. 하지만 나는 그 아름다움이 또한 숙연하고 성숙하며 거기에 형언하지 못할 상실감까지 더해져 간혹 가까이 다가가기가 꺼려질 때도 있다.
봄은 가을과 달리 내가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 슬며시 다가온다. 비온 뒤 차가운 공기를 타고 흡사 강가에 갔을 때 강물 비린내와 달리 뭔가 싱그러운 흙냄새와 같은 냄새가 풍길 때 나는 새삼스럽게 봄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봄은 가볍고 침착하지 못하며 종잡을 수 없지만 새롭고 강하며 정답다. 그래서 나는 봄이 좋다.
상사는 내가 봄을 닮았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사회 초년생이라 철이 없지만 당돌하고, 경험이 없지만 열정적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앞서 사고를 치기가 일쑤고 그때마다 따끔한 충고를 들어야 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다, 등골이 서늘하다, 식은땀이 흐르다.’라는 책에서만 봐 오던 글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경험과 더불어 끝없는 좌절감을 경험해야 했다.
좌절감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특히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좌절감은 그 무기력함을 배로 만든다.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나의 능력을 의심했으며 나아가 내 자신이 무능력하다고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힘들었던 건 내가 몰랐던, 내가 여태까지 쌓아올렸던 나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자만심이 부풀어 올라 우쭐거리는 사이 주위 사람들의 강점을 가려버린 것이다. 겸손이 무엇이라는 것도 몸소 체험을 하면서 배운다. 동료는 내게 얘기한다. 너무 기죽지 말라고, 그럼 일하기 힘들다고, 긴장을 풀라고. 그럼 나는 대답한다. 나는 좀 더 기죽어 있어야 한다고.
사회 초년생이지만 나는 내가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다름’에 대한 이해도의 폭도 남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와 다른 방식의 사고를 비난하고 있고, 틀렸다고 우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많이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서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서로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자 동료는 또 얘기한다. 있어보이게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따지는 홍애가 그립다고.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협소한 시각에서 따지는 논리는 말장난뿐이라고.
이렇듯 일터에서는 일만 배우는 것이 아니고 삶에 대한 지혜도 배운다. 비단 일터에서 뿐만 아니라 배움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요즘 새롭게 한 외국어분야의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내가 자신만만하던 그 공부가 배우면 배울 수록 어렵기만 하다. 다른 사람들의 부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외국어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수업을 통해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단어의 원리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고,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면서 내가 더욱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신비한 경험의 연속이다. 내 이후의 삶의 모든 경험이 신비하지만은 않겠지만 자연스럽고 겸손하게 받아드려야겠다. 삶의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 좌절도 질투도 불안감도 더 적어지겠지? 아니, 그런 상황을 아예 만들지도 않겠지? 그럼 지금 실컷 경험해 봐야겠다. 대신 나 자신을 부정하는 과오는 범하지 말아야겠다.
요즘, 나의 봄은 화창하다. 요즘 나의 봄은 한창 꽃이 만발하다. 거기에 햇살까지 따스하다. 아직 탐스런 열매가 열리기에도, 고상한 아름다움을 뽐내기에도 한참 멀었지만 조급하지 않으련다. 누가 알겠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 속에 다른 계절이 와 앉아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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