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03-27
이 호 석
나는 가끔, 가까이에 있는 합천댐 순환도로를 혼자 드라이브한다. 내가 사는 합천읍 소재지에서 댐으로 가는 도로와 댐 순환도로는 벚나무 가로수로 잘 가꾸어져 있어 통칭 ‘100리 벚꽃 길’로 부른다. 매년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면 전국의 수많은 건아들이 참가하는 벚꽃 마라톤대회가 개최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길을 ‘망향의 길’로 부르며 혼자 다니기를 좋아한다. 이 길을 ‘망향의 길’로 부르게 된 것은, 수년 전 우연히 이 도로변 곳곳에 수몰 지역 실향민들이 옛 고향 마을을 그리워하며 세워 놓은 망향 비를 보고서부터였다. 이 길을 지날 때면, 항상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애틋한 마음을 만나는 것 같아 내 마음도 찹찹해지곤 한다.
며칠 전, 맑고 포근한 날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또 합천댐 순환도로를 달렸다. 가로수 벚나무가 그 화려한 꽃과 무성하던 잎을 홀랑 벗어버린 채 턱 하니 버텨 서서 겨울 동장군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먼저 댐 부근의 물 문화관에 들렀다. 1층 홍보관을 대충 둘러보고 2층 전시실로 올라가 대병면과 봉산면 수몰 지역을 소개하는 영상을 본다. 수몰 지역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흑백사진 속 정겨운 옛 풍경들이 나왔다가 사라진다. 마치 어릴 적 내 고향 마을을 보는 것 같이 마음이 싸~하다. 3층 전망대로 올라갔다. 합천댐 넓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싸늘한 강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난가을부터 무척 가물다가 요즈음 며칠 비가 내렸지만, 아직도 댐이 허멀건 허리춤을 들어내 놓고 배고픈 표정을 짓고 있다.
물 문화관을 나와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도로변 왼쪽 조금 떨어진 곳에 ‘창마을 동적 비’가 말끔한 영국신사처럼 서 있다. 동적 비에는 옛 마을의 유래와 살던 사람들 가구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또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회양관광단지 안에 ‘회양 1구 동적비’가 마른 풀잎들이 찬바람에 춤을 추는 속에 외롭게 서 있다. 옆에 있던 마을 사람이 이곳에는 매년 칠월 백중날이면 실향민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전하며 정을 나누고, 모두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처음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참석하였는데 세월이 갈수록 실향민 1세들이 고령화되고 세상을 떠나 최근에는 몇 사람 오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한다.
이 외도 대병지역에는 ‘상천 천내마을 동적비’를 비롯하여 ‘버들밭 동적비’ ‘역평 동적비’ 등이 순환도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망향 비는 주로 물속에 잠긴 자기 마을 터가 잘 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실향민들이 가끔 이곳에 모여 서로 근황을 전하고 위로하며, 마을이 있던 곳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짓기도 한단다.
대병면 지역을 지나 봉산면 지역으로 들어가 작은 재를 넘으니 먼저 봉계마을 앞 도로변 우측에 서 있는 ‘덕동 망향비’가 기다린다. 옛 덕동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가구주 60여 명의 이름들이 적혀있어 옹기종기 이웃사촌으로 정겹게 살았을 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서 1㎞쯤을 더 가면 댐이 잘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곳에 한국수자원공사가 지원하고 실향민과 주민 성금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망향의 동산’이 있다. 이곳에는 제법 높은 망향의 탑과 육각정이 지어져 있고, ‘망향의 동산’이란 글씨가 큼직하고 선명하게 새겨진 아주 크고 잘 생긴 자연석이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앉아 있다. 어느 사찰 주지 스님이 썼다는 표지석 하단의 망향 비문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한다.
‘망향의 동산 표지석’ 옆에는 대형 오석에 수몰민 가구주 명단이 빼곡히 쓰여 있다. 대병, 봉산면 지역에서 11개 행정리가 수몰되었고, 970세대 4,074명의 주민이 실향민이 되어 정든 고향을 떠났다. 동산 한편에는 수몰 당시 관내 중요 기관과 큰 마을 사진들이 잘 새겨져 있어 실향민들에게 옛 추억을 되살리게 한다.
봉산면 소재지를 지나 국도를 따라 잠시 달리다가 권빈 삼거리에서 다시 댐 순환도로로 내려선다. 계산마을을 지나 송호동 이란 작은 마을에 닿으면 마을 입구에 쪼그마한 ‘마을 이건비’가 있고, 꼬불꼬불한 산비탈 도로를 한참 달려가면 우측 도로변에 ‘고향정’이란 정각과 ‘저포 3구 골마 마을 동적비’가 서 있다.
그런데 바로 앞 도로변 펜스에 붙어있는 색다른 현수막 하나가 눈길을 끈다. 수몰된 이곳 마을 출신 2세인 듯한 자매가 언니는 회계사에, 동생은 사법고시에 합격한 내용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 교통량도 별로 없는 산골 도로변에 이렇게 현수막을 붙여 놓은 것은 고향 산천에 묻혀 있는 조상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또 이곳 출신 실향민들이 지나가다가 봐 주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외도 ‘원저포 동적비와 용주면과 경계지역에 있는 ‘망향정’ ‘노파동적비’ 등 곳곳에 망향의 한이 서려 있다.
나는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과 댐건설로 실향민이 된 사람들의 아픔을 가늠해 보곤 한다. 물론 고향산천과 피붙이를 모두 잃은 남북 이산가족에 비교할 바는 못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며 온갖 애증이 쌓여있는 고향을 영원히 볼 수 없는 실향민들의 마음도 그에 못지않을 것 같다.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이나 댐 건설로 한?수해를 잊고 편안하게 잘살고 있는 아래쪽 사람들, 그리고 여기서 발전된 전기로 편리한 문화생활을 하는 많은 국민은 실향민들이 겪는 망향의 한을 모를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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