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03-13
문 정 아
현 꼬꼬마숲어린이집 원장
핫들 생태공원에 메밀꽃이 햇빛을 받아 하이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 꽃밭 사이로 다양한 모습의 허수아비와 예쁘게 사진도 찍고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원두막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멋스러우면서도 옛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 민동이랑 산책을 하러 우연히 공원을 찾았다가 그동안 까마득한 추억 속으로 잊혀져 가는 원두막을 보는 순간 어찌나마음이 설레고 행복하던 지. 그리고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졌다.
유년시절에 할머니 댁에는 아빠산이라 불렀던 나지막한 야산이 있었는데 그 산에는 온갖 과실수들이 심어져 있었고 그 중에서 사과나무가 제일 많았다. 아빠산 아래에는 조그마한 또랑이 흐르고 조금 넓다라한 터에는 네모모양 가운데 뾰족 위로 솟은 볏짚으로 이은 지붕과 네모난 평상 아래로 조그만 사다리가 놓여진 원두막 하나가 있었다. 아빠랑 할아버지, 삼촌들이 만든 것이다. 나는주말과 방학이 되면 남동생과 이 원두막에서 노는 걸 좋아 했다.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빠알간 사과를하나 따서 얼른 신발을 휙~ 벗어 던지고는 올라 누워 한쪽 다리를 꼬고 손으로 쓱 한번 닦고서는 한 손에는 팔베개를 한 채 맛있게 먹던 꿀 사과가 어찌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그때 바라 본 높은 가을하늘과 주변을 날아다니던 고추잠자리, 바람따라 양떼도 되었다 토끼도 되었다 이리저리 모양이 바뀌던 하얀 구름들, 솔솔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아직도 나의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들은 일하시는데 나와 내 동생은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원두막에 편안하게 누워 베짱이처럼 여름에는 참외며 수박이며 오이, 토마토며 무엇이든 손자, 손녀 먹으라고 이거 먹고놀아라 하시면서 거칠거칠한 손으로 지게에서 따오신 과일들을 하나 둘 꺼내주시던 인정 많으셨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다.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3년 전 100세를 넘기시지 못하시고 97세 연세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100세를 훌쩍 넘기시고도 오래오래 사실 줄로만 알았던 분이셨는데 얼마나 울었는 지 모른다. 그당시 우리 가족에게는 엄청난 슬픔이었고 상심이었다.
원두막 하면 서리가 떠 오른다. 동네 개구쟁이들이 적어도 이인 일조 삼인 일조로 모여 한 명은 낮잠 자는 주인의 동향을 살피고 한 명은 중간 연락망이 되고 한 명은 몰래 재빠르게 참외나 수박 다양한 곡식들과 열매를 훔쳐와 그 당시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시절 실쭉해진 배를 채우는 일종의 애교스러운 장난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서리라는 걸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어 그에 대한 추억거리가 없음이 못내아쉽다. 지금은 서리를 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뿐더러 만일 한다면 뒤에 겪어야 할 엄청난 댓가가 뒤따르는각박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가난했지만 옛날 선조들의 넉넉한 인심과 너그러움, 이웃에 대한 배려라할까 그 따듯한 정이 너무 그리워 진다. 무엇이든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인해 살인이 일어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원두막 하면 또 하나 황순원의‘소나기’소설이 떠오른다. 산골소년과 도시에서 이사 온 소녀랑 첫사랑의 가슴 아픈 사연이 원두막에서의 두근두근 가슴 설레던 장면이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일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원두막이 여러 개 있는 공원에 인공으로 뿌려지는 비를 맞으며 장난을 치며 좋아라 하는 모습 뒷편으로 예쁜 무지개가 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순간 너무 가보고 싶어 이 곳이 어딘지 알고 싶어져 검색해 보니 경기도 양평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이며 이곳에 가면 실제로 야외에 원두막을 만들어 놓고 소나기까지 내리게하여 오는 이들로 하여금 체험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소나기 광장이 있다한다. 나도 그 소녀가 되어 설레임을 느끼고 싶어 언제 한번 꼭 가자고 마음속으로 약속을 해 본다.
요즘은 농촌에도 원두막을 보는 건 하늘의 별따기 보다도 더 어려운 것 같다. 원두막처럼 생긴 파고라나 정자들이 옛날의 원두막을 대신해주는 모양새다. 어찌나 다양한 모양의 파고라들과 정자들이 많은 지. 하나하나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편히 쉴 수 도 있고 심지어는 취사해 먹을 수 있는 전기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어 밤낮 주야로 친목을 도모하며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원아들에게도 원두막 위에 올라 앉아 친구들과 수박을 같이 먹으며 조잘조잘 담소를 나누는 어릴 적 추억거리를 남겨주고 싶어 얼른 한번더 메밀꽃밭을 찾는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키 짧은 다리로 통나무사다리를 한발 한발 디뎌 올라가는 뒤태가 어찌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깨물어 주고 싶어진다. 힘겹게 올라 앉아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받아 든 세모모양 수박이 입속으로 쏘옥 들어가는 순간!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멋진 추억을 선물해 주 었구나 하는 뿌듯함에 행복해 진다.
나도 덩달아 빠알갛게 잘 익은 수박을 한 입 베어 물어 본다. 그런데 왠지 어릴 적 그 원두막에서 먹던 그런 맛이 나질 않는다. 왜 일까? 답을 옛 추억의 원두막에게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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