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02-06
박 옥 순
남편이 키우는 잉꼬의 새끼를 둥지 째 방에 들여와 이유식을 시작한지 며칠이 지났다. 알람으로 시작되는 일상에서 소리 하나를 더 보탠다. 알람을 밀고 일어나 안개 낀 새벽을 맞으려 커튼 채 창문을 밀치니 소리들이 앞 다투어 밀물처럼 밀려온다. 자동차들이 도로 위를 구르는 소리는 귀에 거슬리는 시끄러운 소음이지만 어쩔 수 없는 동행이다. 참새, 꾀꼬리, 날벌레, 풀벌레소리와 개 짖는소리, 고양이의 짝 찾는 소리, 이웃한 무논에서 개구리들은 한껏 목청을 돋운다. 불을 켜고 부스럭대니 새둥지에서도 합창을 한다.
황금연휴라고도 하고 징검다리 연휴라고도 하면서 방송이 들떠 있을 때 설레임과 기대로 5월을 마중한다. 신록의 계절은 나를 생활 속으로, 식당아줌마로 자리매김 하는데 인색함이 없다. 이 계절은 바람 따라 왔다가 바람에 실려 가버릴 것이 확실하다.
연휴 중 어느 날, 바람이 정신없이 불던 오후다. 어르신 손님부터 아이들까지, 온 가게 안이 북새통이다. 부엌에서 고기를 썰던 남편의 큰 목소리가 들린다. 나뭇가지들은 정신없이 이리저리 쏠리고, 창문이 덜컹이고 출입구는 큰 몸짓으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그 와중에도 창문을 통해서 바깥을 보았나보다. 아이들 몇이 앵무새 몇 쌍과 잉꼬부부가 있는 새 우리 가까이에 옹기종기 모여서 무슨 협상, 작당을 하는지 새에게 손짓을 하고, 자기들끼리 웃기도 하면서 남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나 보다. 바빠서 나가보지도 못하는데 바람까지 새 통을 날려 보낼 듯이 을씨년스럽다. 문을 조금 밀고 아이들에게 새를 괴롭히면 안 된다면서 주의만 주었는데 애들이 새 우리를 열었었나보다, 열어둔 채 아이들은 새집에서 멀어졌고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모든 상황을 까맣게 잊었다. 이틑 날 아침에야 열려진 채 비워진 잉꼬 우리를 발견하고는 바람 따라 가버린 어미 새 대신에 아기 새 양육은 남편 몫이 되었다. 솜털이 뽀송뽀송한 제일 큰 아기 새부터, 머리도 들지 못하고 그냥 움직임만 있는 빨갛게 벌거숭이인 막내까지 네 마리의 새끼 새가 제 머리통보다 크게 입을 벌려 아우성이다. 이유식을 한다면서 오전 내 전화에, 왔다, 갔다, 분주하다. 덩달아 나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여전히 황금연휴는 유효중이지만 새 생명들에 대한 애착으로 애를 쓰는 남편을 보면서 ‘참 다정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은 저만치 밀어둔 채, 영업 준비에 바쁜 나도, 아이들도, 어이가 없어 화가 난다. 주사기를 사고, 이것, 저것, 준비를 한다는 둥, 오전 내내 시간을 죽이더니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슬그머니 부엌으로 들어와 나를 집적인다. “잘 받아 먹네”라면서 만족해하는 남편에게 목소리의 톤을 높여 짜증을 내 본다. “장사 안 하끼가” 다행히 남편이 준비한 이유식을 잘 받아먹은 덕분에 아기 새는 생명을 지킨다.
이삼일이 지난날 아침, 하루에 다섯 번씩 이유식을 시키는 새들의 모이가 떨어졌다면서 대구 반월당에 간다고 한다. 마음속으로는 ‘지-랄하네’를 뇌이면서도 너무 바쁘게 마음 안달하지 말고 천천히 다녀 올 것을 부탁 하면서도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가니까 아무리 급해도 안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참 바쁘게 다녀 왔나보다, 구하는 게 반월당에 없어서 택시를 타고 자갈마당에 있는 조류상회에 갔다가 머리위로 달리는 전동철도 탔단다. 열두시가 조금 지나서 집에 도착했으니까 영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어쩐지 손해를 본다는 느낌은 떨쳐 낼 수가 없다. 한 봉지 사천원하는 이유식 두 봉지를 사러 몇 배의 차비를 쓰는 남편, 즐거워서 어쩔 줄 을 몰라 하는 얼굴이다.
몇 년 전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잉꼬 한 쌍을 박카스 상자에 담아 오는 것을 시작으로 새와의 동거가 시작 되었다. 잉꼬를 비롯해 십자매, 검정조, 황금조, 금화조, 문조와 각기 다른 종류의 앵무새 몇 쌍과 참새도 떼를 지어 먹이를 쪼려 몰려다닌다. 일과의 시작이 새를 살피고, 새통 청소, 모이 주기등 정성으로 볼보니 덤으로 아름다운 새소리에 귀가 즐겁다.
꼭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통의 수난은 이루 말로 나열 할 수도 없을 정도다. 뱀에게 덩치가 작은 새들을 뺏긴 것이 여러 번이고 심심찮게 쥐도 새 우리에 들어간다.
어느 날 아침, 새 우리를 들여다 본 남편이 소리를 지른다. 모이를 줄 때 멀쩡 하던 십자매 한 쌍이 뱀에게 먹혔다면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날아다니는 것이 안보여 새집을 살폈더니 뱀이 떡하니 새집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와서 보라고 한다. 우리에 들어 갈 때는 문제없이 들어갔으나 먹어버린 십자매 두 마리 때문에 몸이 커져 못나오니 목숨을 건 사냥이라고 해야 할까.
여러번 뱀에게 새를 빼앗겼고, 허공으로 날려 보내기도 여러번이다. 앵무새 중에서 오파린 미성 앵무새를 달려 보낼 때는 아름다운 색깔 때문에 감탄을 금치 못한 채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기도 했다. 돈이 꽤나 드는 취미이지만 아기 새를 키울 때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만 생각을 하나 보다.
어버이날, 아들 내외와 저녁을 먹으면서 아기 잉꼬 얘기를 했더니 손주들이 꼭 아기 새를 봐야 된다면서 집에 까지 오게 되었다. 아이들은 좋아라 하면서 아기 새 이름을 짖는 다고 한다. 무엇이라고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새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전기불은 새들이 쉴 수 없으니까 빨리 소등하고, 텔레비젼을 너무 오랫동안 켜놓아서 새에게 스트레스를 줘서도 안 되고, 너무 시끄럽게 해서도 안 되고, 어쩌고, 저쩌고, 나를 새의 적으로 만드는 데 서슴치 않는다. 내일 올 거니까 아기 새를 잘 돌봐 달라면서 뽀뽀로 부탁을 하고 차에 오른다.
아기 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먹이를 주니까 잘 큰다. 가장 막내가 우리한테 올 때의 맏이만큼 솜털이 뽀송뽀송하다. 아기 새 형제들을 둥지에서 내려놓으니 달리기를 한다. 얼마나 빠른지, TV에서 본 물위를 나르듯이 달려가는 도마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날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남편의 손바닥에 아기 새의 주검이 있다. 놀라고 당황스럽고 안타깝다. 먹이를 주는데 남편의 바지가랑이 속으로 들어 갔었나보다, 모르고 움직이다가 죽였다면서 시무룩한 표정이다.
아침이 오면 쪼로록, 지지지, 배배배, 세 마리가 제각기 다른 소리로 노래한다. 이 소리는 노래가 아니고 먹이에 대한 욕구다. 절규다. 패악이다. 맏이는 날개가 돋아 어미 새에 가까워졌다. 신통하게도 미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남편의 목소리를 감지한다. “새들아. 아가들아. 잘 잤나.” 새둥지는 난리가 난다. 세 마리의 아기 새들이 둥지를 튀어 나오는가 하면 목청껏 노래한다. “여보 조금만 더 있으면 자기를 아빠라고 부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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