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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5-19

한 질에 삼십만원 하는《친일인명사전》을 고향 초·중·고도서관 기증하고 싶어했던 정인조 향우를 5월 1일(금), 신문사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와 나눈 얘기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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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조, “역사 바로 세우기도 국격”. ©임임분

자기소개를 해달라.

1952년 율곡면 갑산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계산초 1회 입학생이고 초계중 졸업한 뒤 대구로 가서 고등학교 다니고 서울로 대학 가면서 출향인이 됐다. 1968년에 고향을 떠났으니 어느덧 47년이 됐다. 현재 경기 부천에 살고 있다.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젊은 시절에는 대우정밀, 호남정유에서 일하다가 명예퇴직을 하고 2001년부터 플랜트 자재 품질 검사·감리업을 하는 개인사업을 시작해 15년째 하고 있다. 2011년부터 공익모금과 기부문화를 퍼뜨리는 부천희망재단을 만들어 지역 활동도 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을 고향 군민들에게 전하려 했고 두 질(합천문화원, 가회초등학교도서관)을 전했다. 어떤 계기로 하게 된 일인가?

평범한 국민이다. 그저,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역사에 대한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소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역사바로세우기, 한일역사의 새로운 관계 성립을 봐서라도 친일 관련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과 일본의 관계 변화를 봐도,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우리 조상 중 친일인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사안이 활성화되지 못하면서 많은 문제가 희석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나오는 많은 이들이, 실제 우리 근현대사에서 많은 일을 한 이들인데, 이들에게 불편한 진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5공 이전, 한 자리한 사람은 다 친일인사나 그 후손인데, 그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잘잘못에 대한 해결을 한 뒤 새 출발을 해야 한·일 관계 꼬인 고리도 푸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올 봄인가, 서울 초·중·고도서관에 이 사전이 거의 비치되어 있지 않아 서울시의회인가, 서울시교육청인가에서 비치운동을 한다는 보도를 보고 내 고향에선 어떤 상황인가 싶어서, <황강신문>에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좀 실망스러운 점은, 딸랑 두 곳에서 비치요구문의를 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면 다른 곳은 사전이 있는가? 서울도 그런데, 오죽하겠는가 하는 마음과 그래도 고향인데, 하고 기대를 했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역사바로세우기가 더 알려져야 한다는 바람은 여전히 있다. 합천문화원에 사전이 없다는 점은 놀라웠다. 극일하자고 외치고 친일역사에 분노하지만, 현실은 안타깝다. 요즘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저러는 것도, 우리가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으니 우리를 저렇게 보는구나, 우리를 정말 깔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사전은 개인 돈으로 사서 보내주셨나?

그렇다.

친일에 대한 평가는 지역에서도 시시비비가 있다.

전 재산을 다 바쳐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있다. 친일 후손들은 자숙해야 온당하다. 어쩔 수 없었던 과거라고 항변한다면, 앞으로 그 같은 위기가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하자고 할 수 있나. 우리 후손에게는 어떻게 하라고 가르칠 수 있는가. 김 구 선생 같은 길을 가라고 할까, 이웃과 민족을 치는, 경찰·판사 하라고 해야 하는가. 아주 양보를 해서, 그 후손들은 이런저런 진상규명과 비난에 가만히 있기라도 해야 한다. 목숨 걸고 전 재산 바치고, 고문 후유증에 고생한 이들을 생각하면. 그 사전에 들어간 사람도 고르고 골라,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인사들만 넣었다고 안다.

세월호참사 관련 진상규명도 이대로 가다가는 ‘친일인명’ 작업에 걸친 고난을 이을 듯 하다.

1년 동안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참 안타깝다. 우는 사람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 뭐가 어려운지,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 이 일은 정치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3백명이 넘는 사람이 죽은 일이다. 선장 사형한다고 해결되는 일인가. 아니다. 시원하게 유가족이 궁금해하는 일을 밝혀주면 될 일이다. 그런다고 나라가 무너지나? 도리어 나라가 강해지지. 내가 물에 빠져도 나라가 구해주네? 국민이 나라를 믿는다. 그게 국격이다.

경기에 사니 서울향우회에 소속이겠다.

사는데 바빠 향우회 잘 모르고 관심도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초계중동창회 동기회 회장을 맡은 일도 있지만, 동창회도 곧 있지만, 안간다. 따로 마음 맞는 동창끼리 모이는 정도. 그저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힘들고 소외받는 이들 위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고향에는 자주 다녀가는가?

명절 때 부모님 산소에 성묘하러 오고 오늘처럼 따로 모임이 있으면 들리곤 한다. 부모님과 살던 집도 아직 빈집으로 남아있고. 고향마을이 집안 집성촌이라 사촌도 살고 있다. 고향에 대한 애틋함으로 젊을 때는 힘들거나 생각이 날 때 목적 없이 다녀가곤 했다.

부천희망재단 활동을 소개한다면?

지역문제를 지역사람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역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실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돕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돕는 재단이 지역재단이다. 미국에서는 100년 전부터 지역재단활동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우리가 처음 시작했다. 수혜자를 직접 찾아가는 일보다는 활동가를 키우는 일을 한다는 특징도 있다. 활동가의 기본은 자기 욕심을 버려야 한다. 영혼이 깨끗한 사람이 활동가로 활동하면 우리 사회는 달라진다. 상임이사, 담당국장 등 상근자 4명이 일하고 있고 월 5천원부터 1백5십만원을 내는 회원까지 2천7백명이 있다. 88만명이 사는 부천은 서울의 위성도시인 베드타운이다. 부천은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시민사회활동이 활발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재단이 287개 지자체에 퍼지는데 도움이 되는 허브 기능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가에는 무엇을 하는가?

젊을 때는 골프, 등산, 외국여행도 많이 했지만, 요즘은 아직 회사 경영하면서 지역재단 일도 해야 해서 따로 여가는 없고, 대신 국제공인모금전문가 면허를 위한 공부를 따로 하고 있다. 한국에 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 면허가 있으면 지금 하고 있는 지역재단 활동을 더 활발히 할 수 있다. 젊은 사람과 달리 기억력이 좀 딸리고 영어로 된 시험이라 1년 정도로 잡고 공부하고 있다.

<황강신문> 독자이기도 하다. 평소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꼼꼼히 살펴보고 있지는 못하지만, 어느 때는 또 신문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황강신문 논조는 대충 이해되지만, 합천에서는 꼭 필요한 논조라고 본다. 합천의 주류 논조가 꼭 옳다고는 볼 수는 없고 다양함이 존중되어야 하니까. 소수, 진보적 시각이 힘들어도, 이어가는 일이 꼭 필요하다. 한 가지 목소리는 위험하다. 그렇다고 황강신문이 아주 쎄지도 않다. 이 정도 생각은 품고 있는 군민을 이끌어가는 역할은 필요하다고 본다.

덧붙이고 싶은 얘기나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고향을 생각하면, 합천군가도 가끔 생각나고, 합천이라고 하면 해인사를 꼽을 정도의 자부심, 고향마을에 대한 애틋한 사랑, 어머니 품 같은 정이 있다. 부모님 산소가 있으니 고향을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한 때 귀촌도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 일도 지금하고 있는 일을 다 놓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 계획에 없다.

임임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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