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3-11-20
택호
하동에서 시집왔다고 하동댁
장대에서 시집왔다고 장대댁
덕촌에서 시집왔다고 덕촌댁
웃동네에서 시집왔다고 우동댁
아랫동네에서 시집왔다고 아동댁
한 동네에서 혼인했다고 한동댁
마을 사람들끼리 부르는 이름은
한 번만 들어도 알 수 있어요.
정든 고향 잊지 말라고
잊어선 안 된다고…….
우리 어머니는
마산이 고향이라 마산댁
* 택호 : 아주머니 친정 고장의 이름을 붙여서 부르는 이름.
* 웃동네 : 윗동네.
농촌에서는 아주머니를 부를 때, 그 아주머니의 고향 이름을 앞에 넣어요. 아내는 고향이 마산이라 마을 사람들이 ‘마산댁’이라 부르지요. 마산댁, 듣기만 해도 아내가 살던 고향 마을이 떠올라요. 그리고 해맑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농사일에 집안일까지 떠안고 살아가는 농촌 여성들에게 고향 이름이라도 정겹게 불러 드리고 싶어요. 우리 모두 농촌 여성들의 땀과 고향을 잊어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택호>란 시를 썼어요.
이웃 마을에 사는 청년 농부 수연이(23세)가 <택호>란 시를 읽고는,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어요. 노래 부르기 좋게 수연이가 나름대로 고치고 다듬었어요. 같이 농사지으며 사는 서와(본명 김예슬) 누나랑 <서와콩>이란 이름으로 공연을 갈 때마다 이 노래를 불러요. 농부가 쓴 시를, 농부가 곡을 붙여, 농부가 노래를 불러서 그런지 듣는 사람들이 참 좋아한대요. 시는 짧은데, 고치고 다듬은 노래 가사는 길어요. 그래서 일부분만 실었어요.
“……우리 할머니 복잡한 건 싫다고, 그냥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그래서 우리 마을 할머니들은 처음 만난 친굴 이렇게 부르지. 하동에서 오면 하동댁, 덕촌에서 오면 덕촌댁, 웃동네에서 오면 우동댁. 정든 고향 잊지 말라고,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자기 이름 대신 고향 이름 부르지. 눈을 감고 하나 둘 셋을 세고 눈을 떠 보면 우리 할머니 아직 그 자리에 있네. 마을 어귀 소나무처럼 하늘에 박힌 별처럼 온 세상을 다 껴안아 주는 미소를 짓고서……”
비 오는 날이거나 까닭도 없이 마음이 울적한 날에 인터넷이나 유튜브 <서와콩>에 들어가 보세요. 서와콩 배추밭 콘서트, 서와콩 북 콘서트와 같은 영상이 올라와 있을 거예요. 바쁜 일상 속에서 시와 음악이 듣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 지고 편안해 질 거예요.
글쓴이 서정홍 시인
약력: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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