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3-09-18
새천년공원(지금의 일해공원) 안에는 2007년에 세운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가 있다. 파리장서에 참여한 유림들은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목숨 걸고 저항하였다. 이 비에는 파리장서 전문과 곽종석을 위시한 유림 137분의 이름이 세로로 길게 새겨져 있다. 그분들 중에서 합천인이 문용, 송호완, 송호곤, 송호기, 송철수, 박익희, 송재락, 전석구, 전석윤, 김상진(서명자 137명 중에 23세 최연소자), 김동수(강용수, 경남의 유학과 유림의 파리장서운동, 경남향토사논총 제29집, 경남향토사연구회, 2019년 157쪽) 등 자랑스럽게도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11분이다. 이 비의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은 합천문화원 원장이었다.
파리장서의 기본정신은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것이 함께 생기고, 성장하며 살고 있으니’이다. 합천 사람 따로 있고, 광주 사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합천의 기쁨이 거창의 기쁨이고, 광주의 아픔이 합천의 아픔이다. 파리장서에 서명하신 분들은 ‘천지의 바른 기운을 받들어 햇볕처럼 밝히게 하고, 가르쳐 변화를 행하게 하여 천하를 하나로 묶어 크게 서로 하나 되는 세계’를 간절히 원했으며 ‘나라를 되찾을 뿐만 아니라 또한 도덕이 한 시대에 펼쳐’지도록 행동하였다.
국회와 대법원에서도 12·12쿠데타를 내란이라고 했는데 유독 합천군민 중에서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우기는 분들이 있다. 전국의 많은 분들이 전두환씨를 내란의 수괴라고 하는데 합천에서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합천이 낳은 대통령이고, 자랑스런 합천 사람”이라고 한다. "외부단체와 동조하는 합천인이 있을 시 단호히 배격하겠다"라고 까지 언성을 높이는 분도 있다. 이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생각은 ‘천하가 하나’라는 파리장서의 기본정신에 어긋난다. 오히려 미안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당연히 합천군민들은 ‘천하의 바른 기운’을 받들어 햇볕처럼 밝히고, 도덕이 우리 사회에 펼쳐지게 해야 한다. 무엇이 천하의 바른 기운인지는 대법원 판결문과 파리장서를 함께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이 파리장서비 앞에 서서 도로 쪽으로 바라보면 일해공원 표지석 뒷면이 보인다. 파리장서비에 이름이 새겨진 137분의 어르신들이 일해공원 표지석을 지켜보고 계신다. 파리장서 독립운동의 핵심인물인 심산 김창숙이 독재자 이승만을 향하여 민주주의를 하라고 충고하다가 끝내 듣지 않자 수차례나 하야를 권고하였다. 파리장서에 서명하신 분들은 합천의 잘못된 기운을 ‘천하의 바른 기운’으로 바꾸라고 하신다. 만약 일해공원 표지석이 현재 자리에 계속 있으면 분명 파리장서 독립운동을 하신 어르신들께서는 한 자리에 같이 있는 것을 몹시 불쾌해하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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