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3-06-25
농담(2023.6.16.)
축구 선수는 축구공에
야구 선수는 야구공에
멋들어지게 사인을 하잖아요
작가는 책에 사인을 하고요
농부는 어디에 사인을 할까요?
감자? 고구마?
만일 여러분 몸을 열두 개로 나눌 수 있다면 어디로 보내고 싶나요? 하나는 학교에, 하나는 학원에, 하나는 엄마가 원하는 곳에, 하나는 내 마음대로, 하나는…….
농부들은 바쁜 농사철만 되면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할 일이 많아요. 만일 몸을 열두 개로 나눌 수 있다면 하나는 생강밭에 김을 매고, 하나는 말린 마늘을 묶고, 하나는 양파를 뽑고, 하나는 고추 곁순을 따고, 하나는 감자를 캐고, 하나는 택배 보낼 준비를 하고, 하나는 밥상을 차리고, 하나는 설거지를 하고, 하나는 이웃집 산밭에 들깨 심으러 가고……. 이른 아침부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는데, 더 쓸 데 없는 생각이 찾아왔어요.
‘장마가 오기 전에 감자를 캐서 감자에 멋들어지게 사인을 해서 도시로 보내야겠네. 운동선수나 가수들도 사인을 하잖아. 농부가 사인한 감자를 받은 도시 사람들의 표정은 어떨까? 그야 뭐 실실 웃음이 나고 좋아하겠지. 하하하!’
내가 쓴 시를, 내가 읽고도 웃음이 절로 나요. 이 시를 읽는 사람들도 잠시, 환하게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농담>이 아니라 올해는 감자에 멋들어진 사인을 해서 도시 사람들한테 보낼까 해요.
글쓴이 서정홍 시인
(약력 : 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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