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3-04-03
어머니, 손금은
왜 이리 어지럽게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걸까요?
사람이 사는 길도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지.
어머니 말씀 듣고
손금을 자세히 보니
진짜 길이 많습니다.
넒은 길과 좁은 길이 있고
죽 뻗은 길과 굽은 길이 있고
사이사이 샛길도 있습니다.
학교에 강연을 가면 묻고 대답하는(질의응답) 시간에 학생들이 제게 이런 부탁을 가끔 해요.
“선생님, 여태 쓴 시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시 한 편 읽어 줄 수 있나요?”
저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해요.
“시 한 편 한 편 사연이 다 있어요. 시인은 보고 듣고 겪고 느끼고 깨달은 걸 중심으로 시를 쓰니까요. 가장 마음에 드는 시라기보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어요. 제목은 <손금을 보면서>예요. 제가 이 시를 읽기 전에 먼저 자기 손금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옆에 앉은 친구 손금도 살펴보고요.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있고 / 죽 뻗은 길과 굽은 길이 있고 / 사이사이 샛길도 있’지요. 이 세상에서 똑같은 손금을 가진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는 이 시를 쓰면서 서로 다른 손금처럼 우리 모두 ‘길’이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어느 누구도 자기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남이 가는 길을 꼭두각시처럼 따라가지 말고, 어떤 시련이 찾아오더라도 기죽지 말고 ‘나답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 시예요.”
얼마 전, 창원 웅동중학교 학생들을 만나 <손금을 보면서>를 읽어 주었어요. 강연을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학생 하나가 뛰어와서는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어요.
“선생님, 제 손 한 번만 잡아 주고 가면 힘이 날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살았거든요. 오늘부터는 선생님 말씀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기죽지 않고, ‘나답게’ 살고 싶어요.”
나는 그 학생 손을 살며시 잡아 주었어요. 그 손은, 참으로 따뜻했어요.
(글쓴이 서정홍 시인)
약력- 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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