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3-03-20
못난이 철학 1
도둑이나 사기꾼보다
수 천 수 만 배 더 나쁜 게 있다면
가난한 이들과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라 가르치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해서 편안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한테
돈 많고 유명한 사람을 알고 지내는 것이 마치 큰 재산이나 자랑거리처럼 떠벌리는 어른이 참 많아요.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어른들 둘레에는 그렇고 그런 어른들이 널려 있을 거예요.
큰 도시에는 길 건너 가난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부모도 있다고 해요. 부자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에, 이웃 동네 가난한 아이들이 놀러오지 못하게 하는 부모도 있대요. 그런 어른들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따뜻한 인정이나 사랑이 들었을까요? 아니면 썩은 냄새 가득한 탐욕 덩어리가 들었을까요? 그런 어른들한테 무얼 배울 수 있을까요?
가난한 사람, 농부, 노동자, 장애인, 오갈 데 없는 어르신, 어려운 처지를 겪어 불행에 빠진 사람을 많이 알고 지내는 것을 소중한 ‘재산’으로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인기 가수나 배우, 아니면 운동선수를 좋아하잖아요. 그 사람들을 좋아하는 만큼, 우리 모두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좋아하면 안 될까요? 그게 부끄러운 일일까요? <못난이 철학 1>은 어리석고 못난 내 모습(어른들)을 보면서 쓴 시예요.
며칠 전, 학교 문학 강연 시간에 이 시를 낭송한 학생한테 물었어요. “이 시를 읽고 어떤 마음이 드나요?” “선생님, 이 시를 집에 가져가서 우리 엄마 아빠한테 보여 드리고 싶어요. 이 시 속에는 공부 열심히 해야만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윽박지르는 우리 엄마 아빠 마음이 그대로 들어 있거든요.”
친구들 앞에 나와서 용기 있게 낭송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 주는 학생이 있어 흐뭇했어요. 시를 읽으면서 ‘닫힌 마음’을 열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무 지나친 욕심인가요?
글쓴이 서정홍 시인
(약력: 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