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05-03
노재열(前 인천만석초등학교 교장)
‘벽소령대피소 온도 21.1℃, 습도 96, 기압 86.25’라는 온도계가 보인다. 그런데 ‘이 벽소령 대피소에서 잠자리를 배정받지 못해 야외에서 자면 어떻게 하지?’하는 두 번째 걱정이 되었다. 사전 인터넷 예약을 못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치밭목 대피소 관리인이 대피소에서는 1순위가 ‘장애인 및 어린이’이고 2순위가 ‘여자’, 3순위가 ‘60대에서 50대 이상’의 순이라는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했지만 그래도 예약한 사람들이 잠자리 배정을 받는 것을 보고 무척 부러웠다. 예약은‘15일 전에 인터넷으로 빨리 하는 사람’순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그때 인원이 확정이 되지 않아 예약을 하지 못했었다. 예약을 해도 저녁 7시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고 하여 내심 기대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 이윽고 방송이 나왔다. ‘오늘 잠자리를 배정받지 못한 등산객은 모이라.’는 내용의 방송이었다. 벌떡 일어났다. 7~8개 팀이 나갔다. 마침 예약 취소자가 많이 있어서 50대 이상은 모두 배정 받을 수 있었기에 우리 일행도 잠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겨우 어깨 넓이만큼의 공간을 배정받았는데도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둘째 걱정도 비교적 순조롭게 잘 풀렸다.
둘째 날 벽소령 대피소에서의 밤은 13시간이란 긴 시간을 등산해서인지 이 가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리고, 코 고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 아주 깊고 달콤한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밖에서 비닐로 이슬만 안 맞게 가리고 침낭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등산객이 한 20명쯤 되었다.‘17℃인 이 기온에 저렇게 자면 몸이 무거워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을 시작하는 셋째 날. 4시 30분 경에 일어나 아침 일찍 밥을 해 먹고, 6시 10분경에 벽소령 대피소를 출발하였다. 이 더운 여름날, 지리산 능선의 날씨는 너무나도 쉽게 변했다. 갑자기 안개가 몰려오는가 하면 금세 없어지기도 하고 또 다시 생기기를 거듭했다.
대피소 중에서 가장 물이 많이 있는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니 8시 50분. 해발 1440m인 이곳에는 흐르는 물에 세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조그마한 개울물 같은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는데 그 물이 말라 있었다.
이 대피소에서는 라면과 음료수 등 몇 가지 종류의 먹을거리를 팔고 있었다. 가격은 2배 정도였다. 여자처럼 머리를 뒤로 묶고 온몸이 까맣게 그을려 있던 산장지기 아저씨는 없고, 젊은 분들이 지키고 있었다.
연하천 산장은 40명 수용으로 넓지 않아 항상 잠을 자려는 등산객이 많이 기다리곤 했다. 물이 많은 이 곳에 좀 더 넓은 대피소가 있다면 지리산 종주하는 등산객들에게 좀 더 편안한 휴식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수도 하고, 수건에 물도 축이고, 푹 쉰 다음 다시 출발하여 뱀사골 대피소 부근인 화개재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었다. 셋째 날은 좀 느긋하게 걸어 왔기에 3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점심을 해먹고 있는데 당일로 등산하는 일행들이 김치까지 나누어 주어 아주 잘 먹었다. 점심을 먹고 또 걷기 시작하였는데, 곧바로 계단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오르는 계단이 몇 계단인지 각자 세기로 했다. 나는 나대로 정확하게 세었다. 2개씩 270개니 540계단이었다. 그러나 일행 중 누구는 550계단, 누구는 560계단 등 정확하게 센다고 했는데도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
우리 일행 중 등산 가이드인 이종관 부장이 반야봉을 가자고 했다. 김교장은 간다고 했다. 아마추어인 나는 따라 가겠다고 했다. 지리산에서 두 번째 봉인 1733.5m의 반야봉을 가려면 2km정도는 더 걸어야 한다. 그래서 등산객의 대부분은 반야봉을 가지 않고, 그냥 종주한다.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반야봉을 가기 전 삼도봉에 도착했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3개도의 경계인 삼도봉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반야봉으로 올라갔다. 김상진 교장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작년과 재작년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반야봉이 멀게 느껴진다고 했다.
“아니 누가 이 반야봉을 이렇게 멀리 옮겨 놓았느냐?”고 하면서 반야봉에 도착하니 1년에 두 가지의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한 키 이상의 돌탑이 만들어진 것이 첫째 변화이고,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만들어 놓은 ‘반야봉1732m, 구례군’이라고 써 있는 1.2m 정도 크기의 새로운 표석이 두 번째 변화라고 했다. (다음호에 이어서 게재됩니다)
(필자소개)
고향은 초계면 대평리이며, 합천 계남초 9회, 초계중 10회, 초계고 9회 졸업생, 연락처는 010-8778-7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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